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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르포] 영어가 뭐기에? 교육계 ‘청심中’ 회오리
경쟁률 52.2대 1 가평 청심국제중학교를 가다 “학생 41% 1년 이상 외국 체류 경험…영어 수업에 ‘기러기 아빠’ 문의 쇄도” |
“Yes, ma’am. Introduction. Shakespeare is….”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에 위치한 청심국제중학교 1학년 영문학 수업시간. 원어민 교사가 한 학생을 지적하자 그 학생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유창한 발음으로 책을 읽어나간다. 한국어로 시끌벅적 수다를 떨던 학생들도 이내 책 속으로 빠져든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이해하기에는 한국어로도 꽤 난해한 내용이었지만, 읽는 학생이나 듣는 학생 모두 이쯤은 너끈히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다. 지적당한 학생이 서문 읽기를 마치자 원어민 교사는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뒤 몇몇 학생을 지적해 배역을 맡겼다. 이번에도 지적당한 학생들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배역을 읽어나갔다. 이 반 학생은 모두 11명. 이 중 10명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4~5년 이상 외국생활 경험이 있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말이 많아 ‘Mr. talkative’로 불리는 조권일 군은 가족과 함께 4년간 미국에서 살다 와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박예니 양은 4학년 때 엄마와 뉴질랜드에서 1년을 공부했으며, 5학년 때는 혼자 캐나다에서 10개월간 학교생활을 했다. 애초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편입을 결심해 지난 8월 이 학교에 입학했다. 모든 교과 영어로 수업하는 게 매력 포인트 예니 양은 “집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등하교 시간도 많이 들고, 집에 오면 많이 풀어졌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친구들과 24시간 함께 공부하니 시간 낭비가 없어 좋아요”라고 말한다. 예니 양의 장래 희망은 ‘국제변호사’다. 장래 희망이 외교부 장관인 민동권 군은 4학년 때 6개월간 외삼촌이 있는 뉴질랜드에서 공부하다 왔다. 엄마와 인터넷을 검색하다 청심국제중학교를 알게 됐다는 민군. 그는 “일반 중학교와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아 지원을 결심했다”고 또랑또랑하게 말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수업하는 중학교, 청심국제중학교의 모습이다. 지난 3월 문을 연 이 학교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신설 학교지만 벌써 중학생 및 예비 중학생들 사이에서 관심이 뜨겁다. 지난 9월15일 원서를 마감한 2007학년도 일반전형에서 5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것. 53명을 선발하는데 무려 2,766명이 지원했다. 특별전형 중 하나인 영어 우수자 전형도 27명을 선발하는데 445명이 원서를 내 17.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일반전형 경쟁률은 21대1, 특별전형 경쟁률은 8.3대 1이었다. 현재 전국의 국제중학교로는 청심국제중학교 외에 1988년 개교한 부산국제중학교가 있다. 부산국제중학교는 부산시교육청이 설립한 공립 중학교로 부산지역에서만 학생을 뽑는다. 식대와 특성화교육비 등을 제외한 모든 비용이 무료인 데다 희소성 때문에 부산시 학부모 사이에서는 꿈의 학교로 불린다.
그러니 입학을 위해 서울 등 타지역에서 이사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1교시에서 6교시까지 학생들은 일반 학교 학생들이 배우는 공통 교과 과목을 배우며, 제2외국어 및 예능 수업은 교과시간이 끝난 뒤 진행된다. 수업은 영어를 제외하고 전부 우리말로 한다. 반면 올 초 개교한 청심국제중학교는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모든 교과를 영어로 수업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학생과 학부모들이 청심국제중학교를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7년, 미국에서 1년을 살다 귀국한 이충헌 군은 “귀국을 앞두고 엄마와 한국의 학교를 알아보다 영어로 수업받을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입학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니다 귀국한 이정훈 군 역시 “한국의 우수한 아이들만 모아 놓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영어로 수업받을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지원했다 떨어졌으나 1학기 말 편입 공고가 난 것을 보고 다시 지원해 편입에 성공한 문민석 군은 두 번씩이나 청심국제중학교를 지원한 이유에 대해 “우수한 실력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전성자(40·서울시 양천구) 씨는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을 고려하던 차에 한국에서 영어로 수업받을 수 있는 국제중학교가 있다고 해서 관심이 크다”면서 “서울에 설립되지 않는다면, 경기도까지라도 아이를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중학교 입학을 위해 아이를 단기간 어학연수를 보내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반 중학교와 같은 교과를 영어로 가르쳐 흔히 영어로 수업이 이뤄지는 만큼 교과과정도 일반 국내 중학교와 달리 외국의 중등과정을 가르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청심국제중학교의 수업 내용은 일반 중학교와 동일하다. 이는 중학교 과정이 교육법상 국민 공통교육과정에 속하기 때문이다.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는 고2 때부터 전문 교과 과목을 가르칩니다. 국민 공통교육과정이 고1로 끝나기 때문에 고2부터는 일반 고등학교와 다른 커리큘럼으로 가르칠 수 있죠. 그러나 중학교는 전 과정이 국민 공통교육과정에 속해 특성화학교라고 해서 커리큘럼을 변형할 수 없습니다. 정규 교과시간에 1주일에 한 시간 종교수업을 하는 것과 일반 중학교보다 영어를 1시간 더 가르치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 중학교의 커리큘럼과 차이가 없죠.” 이 학교 정철화(49) 교감의 설명이다. 그는 “이 같은 제도상의 맹점을 해결하고 국제중학교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국어와 국사를 제외한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각 교과목 선생님들이 한국의 교과과정을 분석한 뒤 가장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영어 교과서를 부교재로 선택해 가르칩니다. 양쪽 교과서에 똑같은 내용이 있으면 영어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고, 간혹 한국의 교과서에만 있는 내용이면, 다른 원서를 뒤져 발췌해 가르치거나 한국 교과서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 가르치는 식이죠.” 정 교감은 “선생님과 학생 모두에게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현재의 교육 시스템 하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지적한다. “청심국제중학교는 설립 당시부터 청심국제고등학교와 연계한 6년 교육과정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애초 경기도교육청에서 국제중학교 설립 허가를 둘러싸고 난색을 표했지만, 최종적으로 국제고등학교와 연계된 교육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한 결과 허가가 떨어졌죠. 우리 생각에 청심국제중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청심국제고등학교에 진학해 연계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좋다는 것이죠.” 그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적 수요를 가진 학생들이 입학한 만큼 우리 중학교 학생 전부가 청심국제고등학교에 진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사해 보면 외국어고나 민족사관고, 혹은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이들 학생이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학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일반 중학교 과정을 충실히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일차적 임무죠.” 그렇다면 국제중학교에는 어떤 아이들이 다니고 이들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정 교감은 “교수 등 교육자 집안이나 의사 등 전문직 자녀가 전체 학생의 41% 가량 된다”고 말한다. 학업능력과 단체생활 적응능력이 더 중요 학생들 면면을 보면 교수나 상사 주재원으로 외국에 체류하는 부모를 따라 외국에서 살다 온 경우가 가장 많다. 외국학교에 다니다 귀국해 국내 학교 적응이 쉽지 않은 아이들이나 일찍부터 진로를 국제화·세계화 방향으로 잡은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학교 재학생의 46%는 외국 체류 경험이 1년 이상이다. 그렇다고 꼭 외국에서 살다 온 학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외국 체류 경험이 없는 학생도 39% 가량 된다는 것. 그러나 국내파라고 해도 영어 실력은 국외파에 못지 않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말하고 쓰는 데 어려움이 없는 정도의 영어실력이 있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 교감은 “청심국제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영어 실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선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청심국제중학교가 학생 선발 과정에서 유심히 보는 것은 학업능력 및 기숙사 적응능력이다. 입학전형은 서류전형과 심층면접으로 이뤄진다. 서류전형을 통해 4배수(400명)를 걸러낸 뒤 2박3일간 합숙 방식의 심층면접이 뒤를 잇는다. 서류전형에서 가장 유심히 보는 것은 학생들의 영어 수업이 가능한지 여부다. 토플이나 토익 성적, 영어 경시대회 수상 경력, 해외 체류 경험 등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증빙서류도 판단의 기준이 된다. 정 교감은 “서류전형만으로 학생들의 영어 실력 및 학업능력을 판별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중학교는 지필고사로 선발하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는다. “서류만 보고 학생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전형에서는 학교장 추천제를 실시했습니다. 사실 학생의 영어 실력이나 학업능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잖아요? 각 초등학교 학교장이 4명씩 자신의 학교 학생을 추천하도록 했죠.” 문제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 학교장 추천을 받지 못한 학부모들이 중학교는 의무교육과정인데 초등학교당 지원 인원을 4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민원의 골자다. 또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왜 자신들한테 판단을 떠맡기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학교장 추천제를 폐지했다. 정 교감은 “2차 심층면접은 캠프생활을 통해 기본적으로 영어로 의사소통 및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확인하지만 그보다는 학업능력과 단체생활 적응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한다. 1학년부터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학교 특성상 사회 적응능력이 다른 학교보다 높게 요구된다. 학교 당국자에게 가장 큰 고민은 입학전형 과정에서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검증할지 여부다. 강남 학원가에 국제중학교 합격을 목표로 하는 고액과외와 어학연수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현실에서 섣불리 토플이나 토익 등 시험 점수에 가중치를 줄 경우 초등학생들의 입시 열풍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치열한 전형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전체 교사 44명 중 석·박사 학위 소지자가 24명, 외국 국적 소지자가 12명이다. 채용 과정에서 영어로 공개수업을 하도록 해서 원활한 수업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교사는 아예 면접조차 보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검증한다. 이 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25명. 여기에 한국인 교사 2명과 원어민 교사 1명이 배치된다.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4.7명으로 웬만한 대학보다 적다. 특히 영어 수업은 두 학급을 합친 뒤 이를 다시 수준별로 5개 소그룹으로 나누어 10명을 한 반으로 묶어 이뤄진다. 초등학생 입시경쟁 부추긴다? 분기당 수업료는 88만 원. 한 달 기숙사비가 55만 원이다. 학생 1인당 1년에 850만 원 가량인 셈이다. 이 때문에 이 학교는 개교 당시부터 “귀족학교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850만 원에는 수업료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먹고 자는 비용까지 모두 포함된 것이라 생각처럼 비싼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학생들은 화장실이 딸린 2인1실 기숙사를 배정받으며, 기숙사비에는 청소와 세탁비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또 “학교재단이 지금까지 청심국제중·고등학교에 전입한 금액이 수십억 원”이라며 “중·고등학교를 합쳐 학생 수가 200명밖에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투자액이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강조한다. 비싼 수업료 외에도 이 학교가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학생들만 선발하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외국 체류 경험이 있는 학생들만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 학교 관계자는 “외국에서 살다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입학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입학한 학생들은 부모의 근무지를 따라 7~8년씩 외국에서 살았거나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2년가량 조기유학을 다녀온 학생이 대부분이다. 이 학교는 현재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과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학생의 비율을 적절히 혼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영어 실력 차이 때문에 쉽지 않다. 학교 관계자들은 ‘기러기 아빠’들의 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우리나라의 조기유학 문제가 심각함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국내파에게 입학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 교장은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기러기 아빠인데 자녀를 꼭 우리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전화가 많습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답답하죠. 우리 학교 정원 100명으로 기러기 아빠 문제를 해소하는 것은 어림도 없으니까요. 다만 우리 학교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시범 케이스가 됐으면 합니다.” 복잡한 우리 교육구조 속에서 청심국제중학교에 쏠리는 눈과 관심은 점점 더 고조될 것이다. 그 평가가 어떻든 이 학교의 돌풍이 궤도를 이탈한 한국교육을 정상화하는 작은 초석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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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효림_월간중앙 기자 (hyolim@joongang.co.kr) | [2006년 11월호] |